여기 킨킨나투스 란 인물이 있습니다.
루비우스 킨킨나투스 는 고대 고마 최고의 권력인 집정관을 역임했고
그의 가문 역시 몇 대에 걸쳐 고위관직 에 오른 로마의 주도 세력이었습니다.
임기 1년의 집정관에서 퇴임 했을 때 어느날 그의 아들 카이소가 사고를 쳤습니다.
카이소는 뛰어난 군인 이었지만 욱하는 다혈질 로 혈기가 왕성하여 참을 성이 없었습니다.
카이소 가 어느날 평민과 싸우다 그만 그 평민 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된 카이소는 사형 당할 것이 두려운 나머지
보석 상태에서 외국으로 도망 을 쳐버렸습니다.
고대 고마에서는 외국으로 도망친 자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 죄는 고스란히 그의 아버지 킨킨나투스 에게 돌아왔습니다.
평민의 대변인인 호민관들이 아들 카이소가 납부 하지않은
보석금 전부를 킨킨나투스 에게 내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결국 킨킨나투스는 전 재산을 모두 처분하여 보석금은 내고
로마 변두리의 작은 오두막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났습니다
아이퀴족.바비니족.볼수키족.까지 합세하여 로마를 공격해 왔습니다.
당시 집정관인 루키우스 미누키우스 는 군단을 이끌고 나가 싸웠지만
그만 적들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이예 원로원 은 전 집정관 이었던 킨킨나투스를 독제관으로 임명 했습니다.
독제관 이란 유사시 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독제관 의 임기는 6개월 입니다.
전령이 킨킨나투스에게 찾아 갔을 때 그는 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킨킨나투스 는 두말없이 쟁기를 내던지고 곧장 로마로 달려갔습니다.
로마로 달려간 그는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킨킨나투스는 이렇게 만들어진 특별군단 을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가
심야 에 양동 작전을 벌여 순식간에 적들을 모두 무찔렀습니다.
보름도 안 되어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킨킨나투스가 로마로 돌아오자 시민들은 펄펄 뛰며 기뻐 했습니다.
로마에서는 돌아온 영웅을 위해 축제가 열렸고 원로원도 그의 개선을 크게 환영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5개월이나 남은 독재관 임기를 아무런 사심없이 버리고
묵묵히 자신의 밭으로 돌아가 다시 쟁기를 잡고 쟁기질을 시작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고귀한 정신은 바로 킨킨나투스의 쟁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 김창회(로마의 탄생과 포애니 전쟁)에서..